목차 1.축제의 기원 2.예수그리스도는 웃지 않았다. 3.경건함 뒤에 감춰진 즐거움에 대한 욕망 4.중세의 축제일과 기념일 5.잊혀진 생일, 기억되는 기일 6.화려함과 사치를 내세운 궁정의 축제들 7.세속화되고 변질된 축제일의 의미 본문 축제의 기원 오늘날에는 기념의 해뿐만 아니라 축제가 많다. 그 중 에서도 기념의 해는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기념의 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먼저 '기념의 해'는 1300년에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도입한 것이다. '기념의 해(Jubilaum)' 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에서 유래한 히브리어 '요벨(Jobel)'에서 나왔다. 요벨은 산양이나 산양의 뿔 또는 이 뿔의 소리를 뜻한다. 7×7년이 지난 다음에는 50번째 되는 해가 온다. '희년 (화해의 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는 구약성서 <레위> 25장 10절에 따르면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가는 해이고 빚을 탕감해주는 해이다. 구약성서의 진지함에서 나온 이 '사면(Jubel)'으로 독자적이고 즐거운 라틴어 단어 'iubilare'와 'iubilum'가 만들어졌다. 이는 (빚을 탕감받고) 시골에서 터져나오는 외침 또는 환호성을 뜻한다. 이런 환호성은 신과 그 선의를 향한 것이다. 기념의 해인 1300년은 30일 동안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로의 교회를 방문하는 모든 로마인들에게 , 15일 동안 참회하고 회개하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 죄의 형벌을 완전히 사면함'을 약속했다. 또한 선포교령에서 100년을 주기로 기념의 해가 돌아오며 그때마다 완전사면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혀놓았다. 교황 클레멘스 6세는 100년은 1343년에 그 간격을 50년으로 줄여놓았다. 그 이유는 당시의 연대기 기록자가 쓴 바에 의하면 "인간의 생명이 사라지고 줄어들고 질병이 세계를 뒤덮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1350년도 기념의 해, 성스러운 해가 되었다. 그러나 이 당시 유럽의 전 지역은 페스트로 신음하고 있었다. 중세의 평균수명이 30년을 넘기기도 어려운 때였으므로 50년도 지나치게 길었다. 교황 우르바누스 6세는 이 기간을 죄를 사면할 수 있게 해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시간인 33년으로 줄였다. 하지만 1475년에 오늘까지 이어지는 25년 주기가 확정되었다. 키워드 중세기독교, 기독교, 중세, 서양사, 의미 |
2017년 8월 22일 화요일
서양사 중세기독교 사회에서의 축제의 역사적 의미
서양사 중세기독교 사회에서의 축제의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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